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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는 생으로 먹으면 아삭하면서 특유의 알싸하고 매운맛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국이나 조림에 넣고 충분히 익히면 매운 느낌은 한결 약해지고 식감도 놀랄 만큼 부드러워집니다.
같은 무인데 왜 이렇게 달라질까요?
단순히 뜨거워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무를 가열하면 매운맛을 만드는 과정과 단단한 조직에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가 느끼는 맛과 식감이 함께 달라집니다.
생무의 알싸한 맛은 어디에서 올까?
생무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알싸함은 무가 속한 십자화과 채소의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 계열 성분이 들어 있고,
무를 자르거나 씹어 식물 조직이 손상되면 효소인 미로시나아제(myrosinase)와 만나 분해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소티오시아네이트 계열 물질 등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생무 특유의 톡 쏘고 매운 느낌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통째로 있는 무보다 썰거나 갈아서 먹을 때 알싸한 맛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무에서 주요하게 발견되는 글루코시놀레이트와 그 분해산물은
생무와 무 샐러드 등의 매운맛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를 익히면 왜 매운맛이 줄어들까?
열을 가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글루코시놀레이트를 분해하는 미로시나아제는 열의 영향을 받는 효소입니다.
십자화과 채소를 가열하면 이 효소의 활성이 떨어질 수 있고,
조리법에 따라 글루코시놀레이트와 그 분해산물의 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무를 씹을 때처럼 알싸한 맛을 만드는 반응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무가 가지고 있던 당류에서 느껴지는 맛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무의 단맛에는 포도당과 과당 같은 당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즉, 무를 익힌다고 설탕이 새로 생겨 갑자기 단맛이 만들어진다고 보기보다는 생무에서 강하게 느껴졌던 알싸하고 자극적인 맛이
약해지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단맛을 상대적으로 더 편하게 느끼게 된다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서 생채나 무침의 무와 푹 끓인 뭇국 속 무가 같은 식재료인데도 상당히 다른 맛으로 느껴집니다.
그렇게 딱딱한 무는 어떻게 부드러워질까?
제가 무를 조리하면서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조리하기 전에는 칼로 썰 때부터 단단한데,
국이나 조림에서 충분히 익은 무는 입안에서 눈 녹듯 부드럽게 부서집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을 많이 머금어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차이가 컸습니다.
실제로 가열한 무의 식감 변화를 조사한 연구를 보면 변화는 한 가지 과정으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가열 초기에는 세포막의 기능이 손상되고 세포의 팽압이 감소하면서 탄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세포와 세포를 붙잡아 주는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특히 펙틴과 같은 세포벽 구성 성분의 변화가 무의 단단함을 떨어뜨리는 데 관여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생무에서는 각각의 세포와 조직이 단단하게 연결돼 있어 씹을 때 '아삭'하고 저항감이 큽니다.
하지만 충분히 가열하면 그 단단한 조직을 유지하던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씹을 때 필요한 힘이 크게 줄어듭니다.
제가 느꼈던 '딱딱했던 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부드러워질까?'라는 차이가
실제로 무 조직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연결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채소의 식감은 열뿐 아니라 냉동과 해동 과정에서도 크게 변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를 생으로 아삭하게 먹으려고 보관한다면 냉동실에 넣으면 안 되는 음식은? 해동하면 식감 망가지는 식재료에서
냉동·해동 후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달라지는 이유도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에 넣은 무가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이유
한식에서는 흔히 무를 넣으면 국물이 '시원해진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시원하다는 말은 실제 국물의 온도가 낮아진다는 뜻보다는 맛을 표현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무가 익으면서 생무의 강한 알싸함은 줄고 무에서 나온 맛 성분이 국물과 어우러집니다.
여기에 국에 함께 사용하는 육수, 고기, 생선, 파, 마늘, 간장이나 소금 같은 재료의 맛이 합쳐져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 맛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무 하나가 국물을 시원하게 만드는 특정 성분을 낸다'고 단순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가열된 무의 맛 변화와 다른 재료의 맛이 함께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생무와 익힌 무, 요리에 따라 다르게 쓰는 이유
맛과 식감의 차이를 알고 보면 한식에서 무를 사용하는 방법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생채나 무침처럼 아삭함과 알싸함을 살리고 싶다면 생무의 특징을 이용하는 요리가 잘 맞습니다.
반대로 뭇국이나 소고기무국처럼 국물과 함께 먹는 음식에서는 가열하면서 부드러워진 무가 잘 어울립니다.
생선조림이나 무조림에서는 무가 충분히 부드러워지면서 양념과 함께 먹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무를 사용할 때는 단순히 '얼마나 익힐까?'보다
이 요리에서 무의 어떤 특징을 남기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습니다.
아삭하고 알싸한 맛이 필요하다면 생으로, 단단함을 줄이고 부드러운 식감을 원한다면 충분히 가열하는 식입니다.
같은 무인데 완전히 다른 음식처럼 느껴지는 이유
무의 재미있는 점은 생으로 먹을 때의 장점과 익혀 먹을 때의 장점이 꽤 다르다는 것입니다.
생무를 자르거나 씹으면 효소 반응을 통해 알싸한 맛을 내는 성분이 만들어지고
단단한 식물 조직 덕분에 아삭한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열하면 이러한 효소의 활성이 떨어지고 조직을 단단하게 유지하던 세포막과 세포벽 구조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결과 매운 느낌은 약해지고 무는 훨씬 부드럽게 씹힙니다.
딱딱했던 무가 국이나 조림 속에서 입안에서 쉽게 부서질 만큼 변하는 것도 결국 이 과정의 결과입니다.
무를 생채, 국, 볶음, 조림까지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무라도 어떻게 자르고 얼마나 가열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식감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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